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코프룰루의 소리

코프룰루의 소리

음향은 섬세합니다. 언어 장벽에 구애 받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죠. 진공 상태인 우주에는 소리라고 할 것이 별로 없겠지만, 이는 은하계의 시끌벅적한 곳인 코프룰루 구역에서는 다릅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는 로켓의 굉음이나 바스락거리는 저그 소리, 비활성화되는 프로브(탐사정)의 슬픈 신호음 같은 음향 효과와 유닛 대화 등 총 2,381개의 오디오 파일이 포함됩니다. 이 중 일부 음향은 완전히 새롭게 추가되며, 1998년 출시 당시 스타크래프트에서 지원하지 않았던 언어로도 구현됩니다. 음향 중 다수는 거의 20년 가까이 된 아카이브에서 고고학 발굴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 되찾아낸 음향이며, 숨어 있던 주파수가 잘 드러나고 현대의 음향 시스템에 적합하도록 개선되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작업을 시작할 때, 스타크래프트의 그래픽과 인터페이스를 현대적으로 다듬으면서 음향을 1998년 당시의 것으로 그대로 사용한다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음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개발 기간 전반에 걸쳐 블리자드 음향 팀의 목표는 음향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원본의 음향을 다시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음향 효과

스타크래프트의 오디오는 당초 22kHz의 샘플링 레이트(음향을 디지털로 변환할 때의 초당 음향 표본 수)로 녹음되었습니다. 샘플링 레이트가 높을수록 녹음된 음향이 더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현됩니다.

원작 스타크래프트의 22kHz 음향 중 일부는 잘렸거나 고조파(진동에 의해 기초음에서 생성되며 기본 음조와는 별개로 들릴 수 있는 음조)가 덧씌워져 있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에서는 원작 음향 샘플링 레이트를 두 배인 44kHz로 늘려, 원작의 오디오 파일에서 초기 녹음에 숨겨져 있던 음이 더 잘 드러나도록 향상시켰습니다.

"음향의 원본 자료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다면 어떻게 들릴까요?"

완성된 음향을 다시 들었을 때 모든 파일이 "낡은" 느낌이었고 더 좋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정 작업이 지나칠 경우 원본 고유의 느낌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음향 팀에서는 작업 지침을 정했습니다. 음향을 조정할 때 종족, 유닛, 영상 음향 중 일부만을 따로 조정하지 않고, 관련된 음향 그룹 전체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침이었죠.

프로젝트에 참여한 QA 분석가와 엔지니어들은 사운드 믹스를 근본적으로 변경하지 않고도 원본 음향 파일의 충실도를 44kHz로 증폭할 공식을 개발했습니다. 한 번에 하나씩 수정된 파일과 원본 녹음을 모두 들어보고, 원본과 지나치게 다르게 들리는 파일을 찾아내 해당 파일을 다시 작업했습니다.

미학적인 측면에 기반한 음향 재해석은 금지되었습니다. 디자인 감독 에반 첸은 유명한 SF 영화의 리마스터를 잘못된 사례로 들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늙은 스승]이 [외계인 스캐빈저]를 겁주려고 '르으우우우에에' 같은 소리를 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몇 년 후 리마스터된 영화에서는 이 소리만이 변경되었는데, 울림이 가득해 [괴물 같이 느껴지는] "크아아아 크아아" 같은 소리가 되었죠.

원작의 음향은 완전히 [충격]적인 소리였어요. 엄연히 말하자면 틀린 소리였지만, 너무 인상적인 나머지 해당 프랜차이즈의 상징적인 부분이 되었죠. [리마스터에서] 이 소리가 변경되자, 그 장면은 원작과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요소가 향수라 할 수 있죠."

물론, 이런 점이 음향 감독 데이비드 시홀저가 실제 크기의 [깡통형 드로이드]를 만드는 취미를 포기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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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의 사운드 믹스는 밸런스 못지않게 예민한 요소이며, 음향 팀은 리마스터된 음향이 게임플레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프로토스 포톤 캐논(광자포)의 독특한 발사 소리를 통해 플레이어는 즉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발사 소리의 빈도로 경중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리를 극단적으로 바꾼다면, 소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플레이어가 실수하여 승리에서 멀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화 및 현지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와 함께 지원하는 언어가 5개에서 12개로 늘어납니다.

  • 원본 지원 언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유럽)
  • 신규 지원 언어: 중국어(번체), 일본어, 한국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브라질), 러시아어, 스페인어(라틴 아메리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유럽 스페인어는 완전히 재구성하여 녹음했지만, 영어 녹음의 경우 스타크래프트 원작에 충실하도록 유지할 계획인데요. 이는 이미 익숙한 음향과 음성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어려운 작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음향 팀 내부에서도 견본 음성 (또는 견본 음성을 녹음한 성우)조차 교체할 필요가 없을 만큼 좋다는 의견을 많이 받곤 합니다.

짐 레이너 - Soundcloud에서 듣기

선임 음향 디자이너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말합니다. "[최종 음성 녹음]을 듣고 '이거 좋은데, 훨씬 나아, 이 친구 직업 성우 같은데, 목소리 좋잖아.'라고 생각했어요. 맞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저희 중 몇몇은 이미 [견본 목소리]에 적응한 상태입니다. 인간의 기억은 이길 수 없죠."

이는 분명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대부분의 리마스터 작업처럼 과거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일부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주 특징적인 음향 효과와 결합되어 탄생했습니다.

시즈 탱크 - Soundcloud에서 듣기

시즈 탱크(공성 전차)에 명령을 내리면 응답음 너머 배경음으로 윙윙거리는 전차 구동 장치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통신 장치를 통해 조종사와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어떤 유닛을 계속 클릭하면 뭔가 재미있는 행동을 하거나 재미있는 대사(내부적으로는 “짜증난”이라 부르는)를 말합니다. 시즈 탱크의 경우, 조종사가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삽입된 버전으로)을 노래합니다. 다수의 유닛 대화에 이처럼 대사 파일에 은은하게 섞여진 음향 효과가 포함되어, 다른 시각 효과와 마찬가지로 스타크래프트 세계의 일부가 된 것처럼 몰입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SCV - Soundcloud에서 듣기

스타크래프트 원본 대사에는 이외에도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더 존재합니다. 선임 작곡가이자 원작 스타크래프트의 "사운드 가이"라 불리는 글렌 스태포드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수의 블리자드 직원이 외계인, 로봇, 병사 목소리를 담당했다고 회상합니다.

"음성 가공, 음색 변조, 다중 음색 음조 등을 겹쳐 쌓는 방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아마 제가 프로토스 유닛 절반은 담당했던 것 같아요. 제가 템플러를 맡았었죠. [공동 창립자] 앨런 애드햄은 다크 템플러(암흑 기사)를 맡았었고, [수석 보좌] 셰인 다비리도 무엇인가 담당했었죠. [전 크리에이티브 이사] 크리스 멧젠은 마린(해병)과 배틀크루저(전투순양함)를 맡았고..."

단순히 기본 개념을 잡기 위한 용도로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이러한 개념잡기용 녹음이 최종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특이한 녹음을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되살리는 건 도전적인 작업이지만,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그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태사다르 - Soundcloud에서 듣기

음악

음악은 스타크래프트 원작과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모두에서 이야기를 뒷받침하고, 싱글플레이어 캠페인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멀티플레이어 경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음성이나 음향과 마찬가지로, 기타 연주나 끈적이는 느낌의 신디사이저, 코프룰루 구역의 종족들이 웅웅거리며 행군하는 소리는 스타크래프트의 정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워크래프트 II의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음향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블리자드 음향 팀은 스타크래프트의 SF적인 음향 작업을 맡았습니다. 글렌 스태포드의 전공과 경험은 현대 프로그레시브 락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테란 음악 트랙을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디스토션과 슬라이드 기타 음으로 가득 채우게 되죠.

Terran 01 - Soundcloud에서 듣기

프로토스 음악은 오케스트라 성향을 띠어야 했지만, 글렌은 영화 에일리언의 음악 감독 제리 골드스미스에게 영감을 받아 워크래프트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또한, 이 음악이 유사성을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글렌은 의식적으로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를 피했습니다.

글렌 스태포드는 스타크래프트의 외계인이 더욱 기괴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광범위한 음향을 활용해 불길하면서도 음울한 앰비언트 전자 음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따라서, 스태포드는 저그의 테마 음악을 만들 데렉 듀크(디아블로 III: 영혼을 거두는 자오버워치의 사운드트랙을 직접 담당했던)를 팀에 합류 시켰습니다.

지금은 스타크래프트의 사운드트랙을 44kHz로 리마스터하고 있지만, 사실 스태포드는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순항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개발팀은 아이디어에 들떴지만, 판타지에 뿌리를 뒀던 블리자드의 게임들과는 너무 달랐고, 내부적으로 "스페이스 카우보이"라 부르는 몇 가지의 상충적인 요소들을 조화시켜야 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스페이스 카우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이 게임의 개념을 놀리기 위한 것이었는지, 또는 이 개념을 포용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혹은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갈립니다.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통해 다시 만날 음악들 중 글렌이 가장 기대하는 음악은 일반적인 테란 음악과 매우 다른 스타일을 가진 음악입니다. 브루드 워 시네마틱 도입부 영상에서 “브루드 워 아리아”라 불리는 클래식 아리아가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울려 퍼지는데요. 이 음악은 브루드 워 트레일러에 전체 대역을 활용하여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음악이 글렌을 들뜨게 하는 것은 단순히 이 음악이 스타크래프트의 일반적인 음악 형태와 다르기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정말 고무된 상태로 빠르게 곡을 써 내려 갔어요. 중요한 곡이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정의하는 ‘스페이스 카우보이’ 테마는 아닙니다. 다만, 좋은 음악이기에 제가 작업했다는 사실이 뿌듯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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