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모하임이 보는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20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회장이자 공동 설립자인 마이크 모하임이 스타크래프트의 개발 초기 시절에 대해 되돌아보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리지널 게임 제작에 직접 참여한 것 외에도 모하임 회장은 e스포츠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팬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20주년에 모하임은 이 게임의 e스포츠 저변 확대에 대한 추억을 공유합니다.
1998년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을 당시 블리자드는 이미 실시간 전략(RTS)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였습니다. 워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II: 어둠의 물결은 이 장르의 최고 게임 대열에 있었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 시기가 되었을 때 또 다른 RTS 게임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아티스트들은 판타지물 제작에 싫증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라고 모하임이 말합니다. “처음으로 한 일은 모든 타일세트를 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워크래프트 II 엔진을 사용해 스킨 작업을 다시하고 E3에서 선을 보였습니다. 사람들 반응은 별로였습니다. 아직 게임의 작동 방식도 추가되어 있지 않았었습니다. 3개월 동안 함께 작업한 거였는데 아무도 우리 게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96년에 스타크래프트 첫 알파가 나왔을 때 비평가들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워크래프트”라고 혹평했습니다. 이런 냉담한 반응은 블리자드 초창기 개발자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수 많은 RTS 게임이 개발되고 있었는데 우리가 더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모하임은 말합니다. “그래서 밥 피치가 엔진을 다시 개발했고 아트를 수정하고 많은 부분에 있어 수준을 끌어올렸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 3월 출시되었을 때 반응은 뜨거웠고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PC 게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하임은 곧 그 업적이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진지하게 스포츠 경기 수준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토너먼트를 주최하는 회사들이 있었는데프로 게이머를 위한 게이머 태그 지원 기능을 Battle.net에 추가했습니다. 그 후 한국에서 꽤 인기가 높아져 여러 대회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을 실제 방문하기 전까지 정말 그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2백만 장 판매를 기록하자 큰 축하 행사가 열렸는데, 그 때 대회장이 꽉 차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처음 경험한 e스포츠 행사였습니다.”라고 모하임을 말합니다.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관중들은 정말 열광했고 뭔가 일어날 때마다 환호했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고 정말 많은 사람이 관람했습니다. 정말 많은 관객에 팬들은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또 놀라웠던 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다 알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호텔이나 심지어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도 스타크래프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에서 간략하게 인사말을 전하면서 스타크래프트의 수석 프로그래머인 밥 피치를 소개했었는데 환호가 대단했었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것의 탄생이었습니다. 한국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고 모하임은 서울에서 e스포츠의 태동이 시작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됩니다. 블리자드 전체로 보면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팬, 플레이어, 캐스터에 대한 지원을 모색함에 따라 프랜차이즈로서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습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라고 모하임은 말합니다. “사람들끼리 경쟁할 수 있는 작은 경기장과 무대가 있었습니다. 코엑스몰에는 e스포츠 스튜디오도 있었습니다.”
“GSL(글로벌 스타크래프트 II 리그) 개막식에 참석했었습니다. 개막식 후, 매번 GSL에 갈때 마다 스튜디오에서 함께 게임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을 위해 피자를 주문합니다. Artosis(캐스터 댄 스톰코스키)는 채식주의자인데 채식주의자를 위한 피자가 없다고 불평하곤했죠. 전 페페로니를 안 먹어서 저와 Artosis를 위해 채식주의자용 피자를 꼭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대중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e스포츠가 이처럼 큰 인기가 없었다면 서구권에서는 프로 선수들이 펼치는 높은 수준의 플레이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을 겁니다. 서구권에도 그러한 e스포츠의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던 와중 2005년에 블리즈컨이 개최되었습니다.
“블리즈컨은 원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팬들끼리의 만남의 장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우리가 만든 모든 게임을 축하하는 축제로 만들자고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모하임은 말합니다. “그 당시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III e스포츠의 규모가 가 꽤 컸었고, 그래서 초청 토너먼트를 진행했었습니다. e스포츠는 사실 그 당시 미국에서 주류는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e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어떤 해(2011년)에는 GSL 결승을 블리즈컨에서 치른 적도 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MMA 대 MVP의 경기였는데 MMA가 이겼죠. 경기장은 꽉 찼었습니다. 자리가 모자라서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선수 부스에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금요일 밤 늦게까지 진행했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거든요. 시간을 채워야 해서 Tasteless의 한국 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린 보람만큼 게임은 아주 멋지고 훌륭했습니다. 관중도 훌륭했고요. 스타크래프트 II 출시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2010년 7월 출시된 스타크래프트 II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열광적인 팬들 때문에 이 인기있는 프랜차이즈의 후속작에는 엄청난 기대가 있었고 개발팀은 스타크래프트라는 이름에 걸맞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메두사(Medusa)라는 코드명으로 개발된 초기대작 스타크래프트 II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수 많은 관객 앞에서 발표되었습니다.
“2007년에 올림픽 공원을 빌려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주로 스타크래프트를 주제로한 행사였죠. 슈퍼 주니어, 아이비, 싸이 같은 한국 가수들의 공연도 있었고요. 스타크래프트 II 시네마틱을 공개하고 스타크래프트 II를 발표하는 순간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 프랜차이즈의 길고도 화려한 과거를 되돌아보며 모하임은 e스포츠에서의 스타크래프트의 입지에 대해 팬으로서 독특한 관점을 공유합니다.
“스타크래프트 II 는 사실 조금 늦게 출시된 감이 있죠. 스타크래프트가 출시한지 12년 뒤에 나왔으니까요.”라며 “아마 조금 더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II는 아주 초창기 Twitch 시절부터 방송된 게임이라 e스포츠 역사에 있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Twitch 관계자이 처음에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한 주 이유가 스타크래프트 II였다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개발자로 현업에 참여한 지는 오래 되었고 지금은 블리자드 회장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모하임은 여전히 한 명의 성실한 팬으로서 e스포츠 현장을 찾는다. 라이브 행사에 참여하거나 집에서 종종 여러 사람들과 함께 관람하기도 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펼치고 있는 최고의 선수들에 대한 소식도 놓치지 않는다.
“e스포츠는 일반 스포츠 또는 라이브 콘서트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많은 사람들과 현장에서 함께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아닌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온라인 상으로 시청할 때도 관객들의 환호를 함께 들으면 보다 현실감 있게 느껴지죠.”라고 모하임은 말합니다.
팬들에게 이런 수준의 유대감을 만들어 준 건 스타크래프트가 지난 20년 간 이뤄낸 큰 공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처럼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팬인 마이크 모하임은 앞으로 20년 동안 스타크래프트가 무엇을 가져다 줄지를 지켜 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